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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생활정보

이수진 판사, 힘든 어린시절 비하인드 스토리

by ┃ 2020. 3. 13.

이수진 판사의 아버지는 11살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두다리를 쓰지 못하셨다. 그녀의 학창시절은 불우하였고, 생활보호대상자 였다.

 


이수진 판사의 외모를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흙수저의 이미지가 상상되지 않는다. 집안이 여러모로 힘드니 초등학교 6학년때는 학교를 거의 나가지 못하였다.

 

 

 

그래도 다행인건 전라북도 도민들의 성금으로 어머니의 다리 수술을 받을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녀는 전라북도 도민들에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가족은 큰언니의 적은 월급으로 5식구가 살정도로 가난했으며, 학창시절에는 항상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했어야 했다.

 

그녀는 전라북도 도민들의 장학금으로 대학교 등록금을 충당할수 있었다. 하지만 생활형편이 워낙 안좋았기 때문에 사법시험을 볼때까지 가난한 고학생으로 생활했어야 했다.

 

서울 대학교에서 공부 할때도 항상 아르바이트로 생활해야 했다.

 

 


이수진 판사는 1968년 충청남도 논산 출신으로 학창시절은 전라북도 전주 (전주 성심여자고등학교 졸업)에서 보냈으며,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 했으며, 2004년 2월부터 2020년 1월까지  판사직을 지냈다. 최종 근무지는 수원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를 지냈다. 

 


이수진 판사는 전 대법원장의 강제징용 재판 지연 의혹을 폭로한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2016년 양승태 대법원장 인사를 비판하는 토론회를 막으라는 법원행정처 지시를 거부해 인사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정치인의 길을 결정한것은 결론적으로 사법개혁 때문이다. 법을 만드는 제도 와 시스템이 잘못되있다면 아무리 유능하고 청렴한 판사라도 제대로된 판결을 내릴수 있을까?

 


그녀는 "기회가 된다면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고 싶다"고 말한적이있다. 동작구에서 나경원의 영향력은 약하지 하다. 이번 총선에서 그녀의 말처럼 국민의 심판을 받아 나경원을 떨어뜨리고 당선 될수 있을까?

이번 총선에서 이수진 판사의 활약과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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